지금보다 더 어린 때에 홀로 집에 있는 시간이면, 나는 집 안 곳곳에 스민 신비를 찾는 것을 좋아했다. 방바닥의 특별히 찬 곳과 특별히 따뜻한 곳이 만나는 곳에 몸을 누이는 놀이, 울퉁한 벽지를 손가락 끝으로 만지며 거대한 산과 골짜기를 짐작하는 놀이, 욕조에 맺힌 물방울 중 작은 공기방울을 품은 것의 수를 세어보는 놀이. 별 것 없는 이 놀이를 하며, 나는 새로운 세계와 잊혀진 이야기, 신기한 이름을 가진 생명들을 상상했다. 이러한 놀이들 중에서 서재의 놋그릇과 하는 놀이는 나의 가장 비밀스러운 유희 중 하나였다.
내 방 맞은 편의 한기 서린 서재에는 아빠와 엄마의 오래된 물건들이 유리문 안에 들어있었는데, 서재의 맨 위쪽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여남은 개의 크고 작은 놋그릇들이 있었다. 아무도 집에 없는 토요일 오후. 나는 한 번도 쓴 일이 없었던 듯, 흠집 하나 없는 그것들을 몰래 꺼내어 방바닥에 늘어 놓고 조심스레 두드리곤 하였다. 사물과 사물이 맞부딪힐 때마다 울리는 맑은 소리.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그 살아있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지러울 정도로 편안해졌다. 그렇게 집 안의 온갖 사물들을 꺼내어 오래된 놋그릇들과 만나게 하고 나면 이내 엄마 아빠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되었고 나는 조심스레 사물들을 정리하여 제자리에 두었다. 요즘은 그 때 찾던 신비들이 어디로 갔는지 찾기가 전처럼 쉽지가 않다. 아무래도 그 시절이 조금은 그리운 것 같다.
2020.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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