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에서 길을 잃었다.
방황하던 내가 이 숲에 온 것은 닷새 전 즈음이었다.
난 평소처럼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나의 방은 온 간데 없고 나는 숲 속에 누워있었다.
여느 숲과 비슷하지만, 이 숲에는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다.
이 숲에는 비가 오면 물방울 대신 어절들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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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는 어절들은 왠지 기분 나쁘다.
어절들은 제멋대로라 자기들끼리 모여 이상한 문장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숲의 곳곳으로 스며들어 변변찮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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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습하다.
아침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는데, 이런 때면 정말 곤란하다.
평소보다 더 작아진 어절들이 눈앞에서 천천히 움직이다 보니
읽을 수도 없고 난감할 뿐이다.
그저 눈을 감고 앉아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빠른 밀려가고 이상도 진실한 물었다 이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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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장마가 시작되었다.
비가 어찌도 거센지 떨어지는 말들을 읽을 수 없다.
바닥에 떨어진 어절들은 스며들기도 전에 공기 중으로 흩어져 시야를 흐린다.
깨진 어절들은 음절이 되고 음절마저 흩어져 의미도 소리도 없는 음소가 된다.
음소들은 모여 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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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는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떨어지는 어절들로 온몸이 젖어버렸다.
이 혼란 속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다.
그러자 문득 음소들의 강을 따라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음소들은 모두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ㅂㅈㄷㄷㄱㄷㅇㄹㄴㅇㄹㄷㅈㄱㄷㄳㅅㄱ ㅑㅎ ㅕ ㅇㄹㅐㄷㄳㅇㅊ ㅇㄹㅐㄷㄳㅇㅊㅁㅇㅂㅈㅂㅈㅈㅂㅈ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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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호수에 이른다.
호수에는 어절과 음절과 음소들이 가득하다.
호수 한 가운데에 섬이 보인다.
부서진 어절들은 모두 섬을 향해 흐른다.
섬에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가 보인다.
출구일까? 무엇일까?
아무래도 섬에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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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건너기가 쉽지 않다.
이 호수는 부력이 없어서 헤엄치지 않으면 곧바로 가라앉고 만다.
호수의 밑바닥은 고요하고 평온하다.
그렇지만 바닥에 쌓이는 음소들 때문에 곧 수면 위로 올라가야만 한다.
그럴 때는 남아있는 어절들을 딛고 올라가야 하는데
바닥의 어절들은 쉽게 부서져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드디어 섬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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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던 것은 출구도, 별도 아니었다.
그것은 숲의 어떤 나무들보다도 거대한 나무 한 그루였다.
나무를 키운 것은 호수의 어절들이었나보다.
나무는 빛나는 열매들을 달고 있었다.
나는 그중 가장 빛나는 열매를 땄다.
열매에 작은 힘을 주니 반으로 나뉘며 속을 드러냈다.
열매 안에는 문장이 들어있었다.
그 문장은 이렇게 말했다,
fin.
17.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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