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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9일부터 이틀 동안 제주에서 개최된 '자연에서 공부하는 정원모임(자공정모)'에 참여하였다. 더가든 김봉찬 대표님을 비롯해 김명준 선생님, 김장훈 정원사님을 비롯한 여러 전문가분으로부터 제주의 식생에 대해 듣고 공부하고 눈으로 직접 관찰할 소중한 기회였다. 말로 전해 들은 것은 금세 머릿속에서 사라지기에, 당시 전해 들은 이야기와 관찰한 것들, 나의 경험과 직접 수집한 정보들을 한데 모아 정리해보고자 한다. 스스로 공부하기 위해 이곳저곳의 정보를 모아 정리한 글로 독창적 지적재산이 아님을 명시한다. 대부분의 정보는 김종원 교수님의 한국식물생태보감 시리즈와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서 인용, 참조했다. 부족한 글과 잘못된 추론으로 큰 배움을 주신 고마운 선생님들께 이 글이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억새가 무성한 새별오름. 이 안에 생각보다 많은 종의 야생화들이 숨어있다.
초지와 억새, 띠, 그리고 소
새별오름은 정월대보름에 열리는 들불축제로 널리 알려진 오름이다. 가을에는 사면을 가득 채우는 억새 Miscanthus sinensis 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어 해마다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 불을 질러 천이가 간섭되는 새별오름은 식물사회학적으로 이차초원식생이다. 자연적인 초원이 아닌 셈으로 억새군강(참억새군강)은 이러한 입지 중 심한 바람의 영향으로 지속되는 (풍충) 이차초원을 대표하는 식물사회다.
억새가 속한 벼과 식물들은 다른 식물들이 관심두지 않는 토양의 규소(Si)를 흡수하여 줄기를 단단하게 하거나 질병 저항력을 높인다. 김종원 교수님의 『한국식물생태보감 2』에 따르면, 개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벼과 식물들은 잎에 규산체(식물오팔보석, Opal phytolith)라고 불리는 유리질 부속체를 만들어두는데 이 물질이 잎을 날카롭게 하여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억새는 그중에서도 잎이 매우 예리하여 소나 말 같은 발굽동물들도 피하는 식물이 되었다. 또한 억새의 근경은 매우 짧아 라메트(ramet)라 불리는 뿌리 구조를 이루는데 이는 식물 사회에서 남의 땅을 점유하는데 가장 강력한 침투전략이다. 이렇게 자란 억새는 사람 손으로 뽑기 힘든, 말 그대로 억센 식물이다. 그래서 김봉찬 대표님은 억새를 초지의 대장과도 같은 식물이라고도 표현한다.
반면 띠 Imperata cylindrica 는 그와 다른 전략을 취한다. 띠 역시 억새와 같은 (건생) 이차초원식생의 대표종이지만 억새와 달리 띠는 근경이 길어 게릴라처럼 번식(guerilla strategy)하며 초지의 빈자리를 빠르게 채운다. 지상부가 설령 불길에 타버리더라도 살아남은 뿌리로 다시 새 잎을 올릴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띠 종자가 소와 같은 초식동물의 소화기관을 통과하면 발아율이 크게 높아진다는 사실인데, 그러다보니 띠는 자손을 번성시키려면 소를 부를 수밖에 없다. 띠나 수크령같이 종자 산포에 있어 초식동물의 도움을 받는 식물들의 잎이 상대적으로 (먹기 좋게) 부드러운 이유가 된다.
김봉찬 대표님은 소를 초지의 정원사로 부르기도 한다. 아름다운 비유다. 소는 띠나 수크령의 씨앗을 이리저리 옮겨 번지게 하면서도 풀을 뜯으면서 덩굴성 식물이나 목본식물의 성장을 저해하기 때문에 초지의 천이 퇴행을 가속한다. 이러한 초지의 경관은 여러 생물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자손을 번영케 하기 위해 식물들이 택한 서로 다른 전략에 따라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언뜻 보면 억새나 띠 말곤 다른 식물은 없는 심심한 곳 같지만, 이곳에도 적지 않은 종의 야생화들이 자라고 있었다. 아래 이어지는 토막글은 억새와 띠 사이에 자라던 여러 야생화와 벼과 식물들에 대해 정리한 것이다.
풀들 사이로 핀 엉겅퀴 Cirsium japonicum 의 꽃
갯취 Ligularia taquetii 의 마른 꽃대.
억새밭 사이의 떡갈나무 Quercus dentata
나비나물
나비나물 Vicia unijuga 은 콩과의 식물이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지)에 따르면 '해가 잘 들고 다소 경사진 곳' 이 좋다고 한다. 오름과 비슷한 환경이다. 특히 '단단한 목질의 근경이 있고 뿌리가 건장하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불 지르기 등, 잦은 교란이 있는 이차초원식생에서 건장한 뿌리는 분명 생존에 도움이 될 터이다. 일본 기후 현에서는 꽃을 튀겨 먹기도 한다는 데 무슨 맛일까?
맛있게 생긴 나비나물의 꽃. 빛 환경에 따라 꽃 색상이 달라진다고 한다.
미역취
국화과의 미역취 Solidago japonica (Solidago virgaurea subsp. asiatica) 는 매우 흥미로운 식물이다. 유럽에 사는 유럽미역취 Solidago virgaurea 의 지리적 대응종 (Vicarious species, vicars, 지리학적으로 서로 격리된 지역이지만, 서식처 환경조건의 유사성으로부터 생태학적으로 동등한 기능이나 구조를 가진 종, 한국식물생태보감 2) 으로 남한 지역에서는 미역취, 한랭한 북한 지역에서는 산미역취가 흔하다. 다만 유럽산 미역취는 알칼리성 석회암 지역에 흔하고 미역취는 약산성의 건조하고 척박한 초지에서 자란다는 차이가 있다. 미역취는 서식처 빛 환경에 따라 식물체의 크기와 모양에서 변이가 심한데, 반음지 숲속의 비옥한 토양에서는 척박한 양지의 개체보다 크기가 훨씬 크다. 그러나 꽃의 우산 모양 규모가 빈약한 편인데 지난 8월 대암산에서 본 개체와 이번에 새별오름에서 본 개체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한국식물생태보감 2편에 따르면 미역취는 이차초원의 억새군강을 특징짓는 표징종으로 비옥하거나 부영양화된 땅에서는 잘 살지 않는다. 새별오름에서 발견된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이와 반대로 북미 대륙에 사는 같은 속의 미국미역취 Solidago gigantea 와 양미역취 Solidago altissima 는 부영양화되고 습윤한 토양에서 사는데 이들 모두 유라시아 대륙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였다. 이들은 뿌리줄기로 왕성하게 번식하며 큰 무리를 이루는데 우리와 같은 유라시아 대륙에 속한 독일에서 그러한 무리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벼과 식물 사이의 미역취. 미역취 역시 근경이 있지만 주로 종자로 번식하는데 소와 말 입장에서는 훌륭한 먹이이기 때문에 지상부가 뜯기게 되면 개체군의 크기가 작아지게 된다. 그래서 초지의 미역취는 큰 무리를 이루지 못하며, 사진에서 보이듯 주로 작은 포기 수준으로 관찰된다.
대암산 자락의 그늘에서 자라는 미역취 (8월 26일). 꽃의 형태가 확연히 다르다.
2018년 8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Alter Flugplatz (1) 와 베를린 Tempelhof Feld (2) 에서 촬영한 Solidago sp. 북미의 Solidago 속 식물 역시 유럽 대륙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듯하다. 사진을 촬영한 두 대상지 모두 과거에 비행장이었으나 현재는 쓰임을 잃고 남겨진 곳이다.
골등골나물
등골나물 속은 원예종으로 많이 개량된 식물로 우리나라에도 여러 종이 있는데 골등골나물 Eupatorium lindleyanum 역시 그중 하나다. 골등골나물은 이름에 '골'이 들어간 것에서 느껴지듯이 억새형 건생 이차초원에서'도' 나타나는 등골나물 Eupatorium japonicum 보다는 습한 땅에서 산다. 새별오름 같은 이차초원에서 골등골나물을 발견했다는 것은 그곳이 다른 곳에 비해 좀 더 습한 미소환경을 가졌다는 것으로 유추할 수도 있겠다. 등골나물 속 구분하는 게 나로선 아직 쉽지 않은데 골등골나물은 등골나물, 벌등골나물에 비해 엽병이 없다시피 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골등골나물
오이풀
장미과의 오이풀 Sanguisorba officinalis 역시 다양한 종류의 원예종이 있다. 장미과라는 것이 믿기지 않게 꽃의 모양이 독특한데, 이 짙은 빛깔의 둥근 꽃은 벼과 식물의 곱고 부드러운 선들 사이에서 조용히 존재하는 점이 된다.
한국식물생태보감2에 따르면 Sanguisorba spp. 은 수분스트레스가 발생하는 환경조건에서는 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건조하거나 과도하게 부영양화된 토양, 오염된 환경에서는 살지 않고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가득한 산지의 초원이 전형적인 서식처라고 한다. 오이풀이 있다는 것은 새별오름에도 수분스트레스가 적어 오이풀이 생존할 만한 미소환경이 있다는 것으로 보아도 될까.
새별오름의 오이풀
솔새와 개솔새
전 세계 27종의 솔새 속 식물들 중 우리나라의 솔새 Themeda triandra 는 가장 추운 지역에 사는 종류다. 우리나라에는 솔새 속의 식물로 이 1종만 분포하는데 초염기, 약산성을 가리지 않으며 극단적으로 척박하거나 비옥한 곳, 작은 돌 부스러기가 쌓인 미소서식처에서도 산다. 대체로 어디서나 잘 산다.
솔새 열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경이를 느낀다. 우리나라 벼과 식물 중 가장 길고 튼튼하며 독보적인 구조를 가진 솔새의 까락은 이삭열매보다 10배가 넘게 길고 몇 번 이상 꼬여있다. 이삭열매가 땅에 닿을 때 왼쪽으로 꼬인이 까락이 순간 오른쪽으로 돌면서 열매가 흙 속으로 파고들게 하는데 종자머리에 억센 털이 있어서 다치친 않는다. 솔새 열매의 이러한 전략이 솔새가 다양한 서식처에서 적응하고 널리 분포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개솔새 Cymbopogon goeringii 는 솔새와 닮았지만 속이 다르다. 보감에 따르면 꽃피기 전의 어린 잎이나 줄기를 짓이기면 귤향이 난다는 데 그 향이 궁금하다. 속은 달라도 개솔새와 솔새는 서식처가 비슷하다. 다만 개솔새는 난온대 요소로 중남부지역에 흔하고 솔새는 중북부로 갈수록 흔하다. 다만 스트레스가 더욱 심하거나 훼손된 곳에서는 남부더라도 솔새가 더 우세한데 솔새 열매의 전략 때문일 것이다.
보감에 따르면 개솔새와 솔새는 안동-의성-군위 일대에서 유난히 흔하다는데 내가 처음 개솔새-솔새 군락을 본 곳 역시 안동의 임하댐 하류에서 였다. 보감에서는 이 일대를 한반도에서도 심한 대륙성 기후 지역으로 산불이 자주 발생하고 쉽게 건조해지며 모래와 자갈과 진흙이 섞인 퇴적암이 우세한 지역으로 소개한다. 이 지역은 삼림이 훼손되면 식생 발달이 매우 느린 불모지처럼 되어버리는데 그러한 곳에 빈도 높게 자라는 것이 바로 솔새와 개솔새다. 멋지고 대단한 친구들이다. 특히 누구도 살기 어려워 보이는 퇴적암 단층 하식애에서도 솔새와 개솔개는 기린초와 군락을 (기린초-개솔새 군락) 이루는데 이곳이 바로 멸종위기종인 붉은점모시나비의 서식처다. 어떤 이에게는 쓸모없어 보이는 불모지가 다른 이들에게 귀한 집이 될 수 있는데,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면 누군가의 집이 함부로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안타깝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이 알고 공부해야 한다.
중지와 약지 끝에 있는 것이 개솔새, 사진 상 엄지손가락이 손바닥과 만나는 부분으로 전면에 있는 것이 솔새다.
임하댐 하류의 초지. 제비쑥 앞으로 점점이 찍힌 누런 점들이 솔새다. (사진: 김소영)
나래새
벼과의 나래새 Achnatherum pekinense (Stipa pekinense) 는 건조하거나 척박한 곳에서 산다. 심지어 석회암 지역의 가파른 암반 경사지에서도 자란다(보감). 나래새는 초지의 한가운데보다는 바깥 가장자리에 사는데 까락이 커서 빽빽한 풀숲을 지나 땅에 닿기 어렵기 때문이다고 한다. 대신 동물들의 몸에 붙어서 그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 자리 잡는다고 한다. 새별오름에서 본 개체 역시 이러한 입지에 있었다(능선의 길가). 사진은 찍지 못하였다.
그령
벼과의 그령 Eragrostis ferruginea 은 농촌형 노상노방 여러해살이 식물군락, 답압 식물군락의 주요 구성원으로 사람에 의해 자주 밟히면서도 흙의 이동이 없는 안정된 흙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농촌의 등산로에서 차가 다니는 바퀴 사이 가운데 같은 부분이 그런 입지다. 그령 역시 억새처럼 근경이 매우 짧아 토양을 잘 붙잡고 있는 성질이 강하다. 그래서 토양 유실 방지가 필요한 장소에서 이용할 수 있다. 이삭이 홍자색으로 광택이 있는데 가을이 익어감에 따라 창백한 노란 빛으로 쇠하는데 그건 그것대로 아름답다.
길 가에 우점하는 그령
제비쑥
국화과의 제비쑥 Artemisia japonica 은 매우 흔한 풀이다. 특히 모래자갈로된 하천 바닥이나 억새가 사는 건생이차초원에서 산다(보감). 가을에 피는 작은 꽃과 열매가 다닥다닥 맺히는데 벼과 식물의 누런 잎 사이에서 그 작은 점들이 만드는 존재감이 아름답다. 비슷하게 생긴 뻉쑥 Artemisia feddei 과 서식처가 비슷하다.
제비쑥의 마른 꽃대
산부추
우리나라에는 백합과의 산부추 Allium thunbergii 를 포함해 부추속의 식물이 21종 가량 있는데 형질 변화가 심하고 계속 분화 중이라고 한다(보감). 동정을 어렵게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산부추와 비슷한 참산부추 Allium sacculiferum 가 있는데 잎의 단면이나 암술대의 길이 ... 같은 것으로 구분하는 것 같다. 참산부추는 보감에 따르면 억새형 이차초원에서 살아가는데 어쩌면 새별오름에서 본 개체가 참산부추일 수도 있겠다.
저물어가는 산부추의 꽃
당잔대
당잔대 Adenophora stricta 는 초롱꽃과 Campanulaceae 다. 도라지 Platycodon grandiflorus 역시 초롱꽃과인데 서로 은근히 닮았다. 당잔대는 햇볕이 잘 들고 건조한 곳에서 잘 자라는데 그러한 성질은 도라지처럼 굵은 뿌리를 발달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보감에서는 '굵은 뿌리는 저장기관의 발달을 의미하고 건조하거나 척박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잘 대응할 수 있는 일차적인 생태형질'이라고 소개한다. 그래서 국생지에서도 지하부의 습기나 과도한 영양은 당잔대의 성장에 좋지 않다고 소개한다.
당잔대. 작고 예쁘다.
식재 과정 중에 촬영한 모시대의 뿌리. 모시대는 당잔대와 같은 Adenophora 속이다.
자주쓴풀
용담과의 자주쓴풀 Swertia pseudochinensis 은 한해살이풀이다. 종종 뿌리에서 쓴 맛이 난다는데, 얼마나 쓰길래 이름이 쓴풀이 되었을까. 사실 용담 龍膽 역시 웅담 熊膽 보다 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쓴풀속 Swertia spp. 은 용담과 안에서도 가장 쓴 종에 속한다고 한다. 보감에 따르면 쓴풀 종류는 '숲이 발달하지 않는 풀밭 식물사회의 전형적인 구성원'이다. 그늘이 질수록 개체군이 감소하는데 억새가 우점하는 고경초원에서는 '개체군' 크기가 제한된다고 한다.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답사에서 우리가 발견한 자주쓴풀 역시 그래서 풀밭의 가장자리에 직사광선이 노출되는 곳이나 키가 작은 띠 사이에서 볼 수 있었다. 쓴풀 종류 중에서도 자주쓴풀은 전국적으로 분포하는데 알칼리성의 사문암 토양에서도 출현한다. 몇 년 전 영월에서 답사하다 스치듯 자주쓴풀인가 싶은 개체를 본 적이 있는데 명확히 동정하진 못했었다. 어쩌면 그때 보았던 게 자주쓴풀이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개체의 크기는 작지만 별모양의 꽃이 화려하다.
무릇
대학 생활을 보낸 서울시립대학교 중앙도서관 앞에 적당히 큰 활엽수들이 많은 녹지 사면이 있다. 그 나무 아래 사면에서 무릇 Barnardia japonica 을 처음 보았다. 맥문동을 닮았지만 단단한 느낌의 맥문동 꽃과 달리 무릇은 바람을 따라 살랑살랑 흔들릴 것 같은 모습이다. 이후 서울에서 무릇을 본 것은 남산에 있는 팔도소나무정원에서 였다. 역시 반그늘진 곳이었는데 풀을 벤지 얼마되지 않았는지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무릇은 무리 짓는 것은 잘 못하지만,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되면 가능하다. 무릇이 꽃 피는 시기를 피해 주기적으로 풀을 베는 곳에서는 초지 조건이 잘 유지되어 우점할 수 있다. 추석을 앞두고 늦여름에 벌초하는 무덤이 그러한 입지겠다.
백합과의 무릇이 살아가는 데 있어 햇볕은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그래서 무릇은 이차초원 혹은 자연초원에서 주로 자란다. 심지어 노두나 바위 틈, 해안가 혹은 황무지에서 자라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한여름의 고온을 피하고자 땅 속 비늘줄기에 의지한 채 휴면한다고 한다.
무릇. 비늘줄기가 인상적이다.
들깨풀
꿀풀과의 들깨풀 Mosla scabra 은 한해살이풀이다. 그런데 옅은 자주색 꽃이 매우 아름다워 한번 보면 잊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은근히 비슷한 식물들이 많아 이름을 곧잘 잊게 된다. 앞서 언급한 제비쑥처럼 가을에 바랜 벼과식물들 사이에 견고하고 진한 선이 되어 초지 경관에 리듬감을 더한다.
새별오름의 들깨풀
한라꽃향유와 물결부전나비
꿀풀과의 한라꽃향유는 Elsholtzia splendens Nakai ex F.Maek. var. hallasanensis 여름형 한해살이풀이다. 향유속에도 여러 종이 있는데 향유와 꽃향유가 대표적으로 흔하고 한라꽃향유를 비롯해 변산향유 등 나머지 종들은 지역적으로나 국지적으로 분포한다. 초원이나 숲 가장자리 소매군락에서 살아가는데 수분 조건이 양호하면서도 통기성, 통수성이 좋은 땅에서 산다.
물결부전나비 Lampides boeticus (1속 1종)는 대서양 카나리아 제도, 북미, 남아시아 등 분포가 넓은 편인데 한반도에서는 주로 제주를 포함한 남부지역에 많다. 2009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월출산에서 산란하는 개체를 발견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종은 미접 迷蝶 종으로 우리나라에서 산란하고 성체가 되는 것이 아닌,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성체가 날아오는 개체로 알려져 있었다. 지구온난화에 따라 그 분포가 북상하고 있어 환경부에서 국가 기후변화 생물지표 나비로 지정하기도 했다. 주로 8월 이후 가을에 많이 발견된다. 그나저나 저 작은 몸으로 험한 바다를 어떻게 온전히 건널 수 있었던 걸까?
한라꽃향유의 꿀을 빠는 물결부전나비.
기타 정보들
- 그라스는 봄, 가을 서늘한 시기에 성장하고 더운 여름에는 휴면하는 쿨시즌그라스와 더운 여름에 성장, 가을부터 휴면하는 웜시즌그라스로 나뉜다. 억새 종류는 웜시즌그라스 중 하나. 그래서 정원의 억새가 너무 무성한 경우 억새가 성장하는 여름(7, 8월)에 한 번 정도 지상부를 베어주면 주변 야생화들이 자랄 공간을 마련해 줄 수 있다.
- 그 외에 이질풀 종류 (Geranium sp.) 딱지꽃 (Potentilla chinensis) 도 있었는데 명확히 동정하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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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제, 최동기, 최성호, 심미영, 지용주, 이웅(2021).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조선식물향명집』 주해서. 심플라이프.
박수현, 조양훈, 김종환(2016). 벼과 사초과 생태도감. 지오북.
이창숙, 이강협(2018). 한국의 양치식물-제2판. 지오북.
문형태, 유영한(2019). 토양환경과학. 공주대학교출판부.
김성수, 서영호(2012). 한국나비생태도감.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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