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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창계곡 민간인 학살 메모리얼 설계 (2017. 5)



대구의 도심을 가르는 신천을 거슬러 오르면 가창댐에 다다를 수 있다. 댐의 오른쪽에 위치한 여수로는 기능을 잃어 사라졌으며 여수로가 사라진 자리의 끝에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터널이 뚫렸다. 터널 입구의 왼편에 붙은 동판에는 간략하게 ‘가창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추모공간’이라는 설명이 적혀있다. 터널은 완만하게 밑을 향한다. 터널의 끝에는 구덩이가 있다. 구덩이는 지름이 20m, 깊이 10m에 이른다. 천장에서는 빛과 함께 물이 떨어지고 있다. 압도적인 공간감과 깊게 울리는 소리에, 함께 구덩이를 찾은 다른 사람들의 존재마저 사라져 버린다. 출구 옆의 작은 길을 지나면 엘리베이터가 있다. 천천히 지상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는 어느새 나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다. 엘리베이터를 나서고 제방 위를 걸으며 상류 쪽을 바라보니 천천히 물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세 개의 소용돌이가 보인다.


댐의 여수구인 이 곳은 1950년 7월 국민보도연맹 학살로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진혼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세 개의 여수구는 학살사건 당시 300여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묻힌 세 개의 구덩이에 대한 은유이자, 억울하게 계곡으로 끌려와 죽게 된 민간인들의 혼이 신천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통로이다. 저수지의 집수량이 방류량보다 많을 때는 여수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진혼으로서의 방류가 이루어지는 7월에는 하루 최대 54만톤 가량의 물이 여수구를 통해 방류되며,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세 개의 구멍을 저수지 표면에 만든다. 그러다가 저수지의 수위가 여수구 높이까지 이르게 되면 물은 더 이상 방류되지 않고 여수구의 머리가 수면에 드러나게 된다. 세 개의 여수구 중 두 개는 저수용량을 조절하기 위해 오로지 기능적으로 사용되어 사람이 접근할 수 없지만 나머지 한 개는 사람들이 직접 내부로 들어가 경험할 수 있다. 저수지의 물을 모으기 위해 수문이 닫히게 되면 여수구 안은 빛도 물도 들어오지 않아 어둠과 고요뿐이다. 그러다 수문이 열리게 되면 천정의 구멍을 통해 쏟아지는 물이 공간을 압도한다. 방류가 끝나면 여수구 안으로는 고요히 따스한 햇살이 들게 되며 다시 저수지에 물이 차기를 기다린다.


희생자의 혼을 실은 계곡의 물은 도시로 흘러가, 비극적인 죽음에 대해 공감하는 일이 단순히 추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가져다 줄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한다. 학살 4년 후에 최초로 건설된 가창댐은 학살당한 사람들이 묻힌 구덩이를 지난 63년 동안 은폐해왔을 뿐만 아니라, 강의 흐름을 막아 신천을 마르게 하였다. 그에 따라 1997년부터 대구시는 하수처리수를 신천에 방류하고 보를 건설하여 유량을 확보할 수는 있었으나 악취와 녹조 등, 하천의 근본적인 생태적 회복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세 개의 여수구를 통해 막혔던 하천의 물을 흘려 보내는 것은 하수처리수를 사용하는 기존의 방식보다 경제적이며, 하천을 본래 모습과 가까운 상태로 회복시키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맑아진 하천은 대구 시민들을 포함해 하천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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