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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시험림 (202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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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9일부터 이틀 동안 제주에서 개최된 '자연에서 공부하는 정원모임(자공정모)'에 참여하였다. 더가든 김봉찬 대표님을 비롯해 김명준 선생님, 김장훈 정원사님을 비롯한 여러 전문가분으로부터 제주의 식생에 대해 듣고 공부하고 눈으로 직접 관찰할 소중한 기회였다. 말로 전해 들은 것은 금세 머릿속에서 사라지기에, 당시 전해 들은 이야기와 관찰한 것들, 나의 경험과 직접 수집한 정보들을 한데 모아 정리해보고자 한다. 스스로 공부하기 위해 이곳저곳의 정보를 모아 정리한 글로 독창적 지적재산이 아님을 명시한다. 대부분의 정보는 김종원 교수님의 한국식물생태보감 시리즈와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서 인용, 참조했다. 부족한 글과 잘못된 추론으로 큰 배움을 주신 고마운 선생님들께 이 글이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빽빽한 삼나무가 만드는 리듬감. 하부에 다양한 활엽수들이 자라는데 유독 박쥐나무Alangiumplatanifolium var. trilobum와 큰천남성이 많이 보였다.



삼나무와 wolf tree

답사의 첫 대상지인 한남시험림은 1922년 국유림으로 지정된 숲으로 2002년 7월부터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가 관리하고 있다. 조림된 삼나무 숲이 많은데 삼나무 사이로 다양한 활엽수와 초본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삼나무는 줄기가 곧은 편이다. 그 강한 수직의 선들 사이에 부드러운 사선을 가진 활엽수가 자라는 장면은 경관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충분히 인상적이다.


몇 년 전, 미국의 조경가이자 사진작가인 Anne Whiston Spirn의 책 『The Language of Landscape』에서 wolf tree 라는 개념에 대해 알게 되었다. wolf tree 는 주변의 다른 나무보다 나이가 확연히 많고 수관이 넓게 펼쳐진 나무로, 다른 나무들이 없는 상태에서 숲이 복원되기 전까지 홀로 오랜 시간 자라다 보니 주변 나무들과 이질적인 크기, 수관을 보이는 나무를 뜻한다. 그 모습이 마치 늑대처럼 외로워 보여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 대륙 초기 정착기에 유럽인들이 경작 혹은 목재로 사용하기 위해 숲의 나무들을 많이 베었는데, 그 당시 한두 그루 남겨둔 나무들이( 그늘을 위해, 혹은 방목한 가축들에게 먹이로 제공하기 위해) 갑작스럽게 얻은 경쟁으로부터의 자유로 풍족하게 자라다, 어떤 연유로 주변 숲이 복원되어 홀로 이질적으로 남겨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래서 wolf tree의 존재는 과거에 대규모의 교란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폭목暴木이라고 부르는 산림경영 용어가 이 wolf tree에 대응된다. 폭목, wolf tree는 산림경영상 제거해야 할 나무로 보기도 하는데, 수관이 넓고 형질이 불량하여 이웃 나무들의 생장에 방해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숲에는 나무들만 사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생물들과 함께 균형을 이루며 지속되기 때문에 이러한 발상은 다소 위험할 수 있다. 특히 미국처럼 오래된 숲이 많은 경우 wolf tree의 수령이 150살 이상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오래된 나무는 그 자체로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처가 되어주기 때문에 wolf tree를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더불어 wolf tree는 미대륙 개척기(벌목과 개간)에서 1차세계대전과 대공황(징집, 경작 포기 등의 이유로 경작지들이 방치되어 숲으로 돌아가는 시기)으로 이어지는 미국 역사의 산 증인(witness tree)이라는 측면에서 역사 문화적으로 의미와 보존 가치를 갖기도 한다. 여하튼, 이 숲의 활엽수들이 꼭 wolf tree인지 아닌지는 더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삼나무 숲속의 이질적인 활엽수들은 나로 하여금 미국의 전설적인 wolf tree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제주가 보내온 시간 속에서 벌어졌을 법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상상하게 한다.


외로이 자라는 활엽수



많게는 90살도 넘은 이 숲의 삼나무에는 이끼들이 많이 붙어있었다. 창백한 청록빛의 이끼가 많았는데 우리는 일단 가는흰털이끼로 동정하였다. 이끼는 수목의 뿌리 쪽에 가까워질수록 두터워지고 많아졌는데 그 위로 삼나무의 유목이나 고사리들이 자라기도 하였다.

가는흰털이끼. 유통명 비단이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아는 비단이끼와 색이 많이 다르다.

진녹색의 비단이끼와 달리 창백한 청록색. 건조된 상태라 그런 것일까?


한남시험림의 큰천남성 Arisaemaringens. 가을을 맞아 잎이 누렇게 변했다. 천남성 종류는 구근식물로 분얼성이 강하여 옆으로 분지하며 새순을 낸다.

그래서 4~5년마다 포기를 나누는게 좋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도은조롱

나도은조롱 Marsdenia tomentosa처음 보는 식물이었다. 박주가리과의 식물 중 난대성인 식물이며, 덩굴성이지만 기댈 것이 없으면 알아서도 잘 자란다고 한다. 준위협(NT)의 멸종위기종으로 소개되기도 하는데 산림 벌채로 자생지가 파괴되고 있다더라. 줄기를 자르면 나오는 하얀 액 때문인지 소젖덩굴이라고도 부른다. 열매가 조롱박을 닮아 나도'은조롱'(온조롱)이라 이름 붙여졌는데 사진을 찾아보니 열매가 정말 조롱박을 닮았다.

기댈 곳 없이 자라고 있는 나도은조롱(1)과 삼나무에 기대 자라고 있는 나도은조롱(2)



숲의 토양

절개된 부분에서 이곳 토양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부엽토층은 약 30cm 정도였으며 하부는 거의 암반에 가까운 흙(화산회토일까?)으로 보였다. 그 30cm 정도의 토양은 매우 촉촉하고 짙은 갈색, 혹은 검은색이었으며 부스러진 낙엽이 많이 섞여 있었다.

절개지 전경(1)과 확대 컷(2). 노트의 길이는 약 23.5cm 이다. 짙은 갈색, 혹은 검은빛의 흙(3)


새비나무와 덜꿩나무

마편초과의 새비나무 Callicarpa mollis 는 작살나무 Callicarpa japonica 를 닮았다. 그런데 잎에 부드러운 털이 있다. 만지면 참 부드럽다. 열매에도 털이 있다고 하셨는데 보진 못했다. 새비나무는 음지에 매우 강해 그늘에서도 열매를 잘 만든다. 흥미롭게도 영명은 beautyberry. 옆에 자라던 덜꿩나무 Viburnum erosum 는 흔히 조경용으로 심던 개체와 잎 형태가 아주 달랐다. 그것 역시 원종이 아닌 것인가보다. 새비나무처럼 잎에 털이 있어 부드럽다. 김봉찬 대표님에 따르면 덜꿩나무는 따로 풍년이랄게 없이 열매가 아주 많이 열리는 나무라고 한다.

새비나무(1)와 덜꿩나무(2)



가는잎처녀고사리

가는잎처녀고사리는 이번 경기정원박람회에서 김봉찬 대표님(이하 김대표님)과 함께 심은 식물이기에 친숙한 고사리다. 길을 따라 숲의 경계부에 무리 지어 자라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무리를 이룬 것은 긴 근경을 뻗어나가며 장소를 점유하는 습성 때문이다. 부드러운 연둣빛 잎 덕분에 다른 고사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눈에 알아보기가 쉬웠다.

오후의 햇살을 받아 빛나는 가는잎처녀고사리


한 장소를 쉽게 점유하는 것은 긴 근경 때문이다. 그러나 초원의 억새와 띠의 관계처럼, 근경이 짧은 식물(나도히초미)에게 자리를 쉽게 내어준다.


확연히 푸릇푸릇한 개체들(1)과 그렇지 않고 마른 개체(2,3)들도 있었다. 가을이 되면 잎이 쇠하는 것이 섭리지만 10월 말까지 푸릇한 개체는 여름에 한번 지상부를 잘라 새잎을 올린 것으로 이렇게 관리할 경우 좀 더 늦은 가을까지 푸른 잎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뱀톱

뱀톱 Huperziaserrata 은 이번 답사에서 만난 식물 중 가장 독특한 것 중 하나였다. 물풀을 닮았는데 석송과의 상록성 양치식물이다. 볕이 살짝 들 것 같고 낙엽이 넉넉히 쌓인 그늘에서 무리 지어 자라는데 그 모습이 오묘하다. 가까이 보면 약간 기는 듯 자란다. 김대표님에 따르면 경기도 지역까지도 자랄 수 있다고 한다. 잎과 잎 사이에 누렇고 작은 포자낭을 숨기고 있다. 그런데 이름이 왜 하필 뱀톱일까?

뱀톱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물 속 같다.



새우난초

새우난초는 지난 4월 물영아리오름에 방문했을 때 꽃대를 올린 개체들을 본 적이 있다. 당시 관찰한 개체 중 일부는 묵은 잎을 달고 있기도 했는데, 이번에 한남시험림에서 한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새우난초. 두 번째 사진에서 내년 봄을 준비하는 순을 볼 수 있다.



복분자딸기

지금보다 더 모르는 것이 많던 시절, 대학교 2학년 정원설계스튜디오에서 복분자딸기 Rubus coreanus 을 식재계획에 반영한 적이 있다. 흰빛의 줄기가 인상적이어서 그랬다. 작은엄마가 미국에서 사다주신 'SHADE PLANTS'라는 제목의 책에서 처음 보고 고른 것이다. 지금 한남시험림에서도 간간이 볼 수 있었는데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지)에 따르면 '내한성/내조성/내공해성 모두 강하고 음지보다는 양지에서 번성하며 건조기 습지 모두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또 가지 끝이 휘어져 땅에 닿으면 뿌리가 내린다고 하는데 그것도 참 신기하다.

복분자딸기


한라돌쩌귀

한라돌쩌귀는 간혹 재배 농가에서 만난 적 있는데 자생지에서는 처음 만났다. 깊은 삼나무 숲에서 데크 길과 멀리 떨어진 쪽에 홀로 자라고 있었다. 국생지에 따르면 '한라산의 부엽이 두껍게 쌓여 비옥하고 습기가 풍부한 토양조건의 양지'에서 자란다고 한다. 뱀톱도 그렇고, 이곳에는 두터운 부엽층을 좋아하는 식물들이 많나 보다. 뿌리가 경첩을 닮아서 '돌쩌귀'라 불린다는데, 뿌리가 어떻게 생기면 경첩을 닮을 수 있는 걸까.

한라돌쩌귀



동백나무

깊은 삼나무 그늘 아래에 동백나무 Camellia japonica 가 여럿 있었다. 김대표님께서 말씀하시길 동백나무는 상록활엽수 중 가장 음수인 수종 중 하나로 특히 어두운 그늘에서도 잎이 반짝거리는 것이 매력이라 하셨다. 다만 그것이 양지에서는 너무 반짝이니 동백나무는 그늘진 곳에 심는 것이 좋겠다. 공간 디자인이 그러하듯이 식재 설계도 태양에 따른 빛의 변화와 그에 따른 환경적 조건을 고려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동백나무의 잎



주름조개풀

주름조개풀 Oplismenus undulatifolius 은 벼과의 흔한 풀이다. 도시공원에도 조금만 사람의 출입이 뜸한 녹지에서라면 쉽게 만날 수 있다. 약간 주름진 뾰족한 잎이 바닥에 깔리듯 나는데 땅에 닿은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며 서서히 퍼진다고 한다. 그늘진 곳에서 지피용으로 쓸 만해 보인다. 김종원교수님의 『한국식물생태보감1』에 따르면 주름조개풀은 '사람을 따라다니는 식물'로 '자연성이 낮은 이차림에 사는 지표종'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시험림의 주름조개풀 무리 역시 탐방로 주변의 인간 간섭에 노출된 곳에서 흔했다. 이러한 입지는 주름조개풀이 번성하는 데에 최적의 조건을 갖는데 종자가 익으면 분비되는 점액으로 사람의 몸이나 동물의 털에 쉽게 달라붙어 멀리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얗고 작은 술 같은 것이 달린 꽃이 여름부터 가을까지 피는데 그 꽃 또한 작은 신비로움을 품고 있다. 제주에서 본 개체 중엔 서울에서 본 것보다 작은 것들도 많았는데 다른 종일 수도 있으려나? 잘 모르겠다.

주름조개풀의 꽃(1). 길가에 자라는 개체들(2)은 일반적으로 봐온 개체들보다 키도 작고 잎도 작았다. 다른 잡초들처럼 답압이 발생하는 곳에서 생존 전략을 달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마지막 사진은 서울시 양천구 온수근린공원2지구 상수리나무 조림지 하부에서 10월 25일 촬영.



나도히초미

관중과의 나도히초미 Polystichumpolyblepharum 는 상록성이긴 한데 잎이 나기 15일 정도 전에 묵은 잎이 쓰러지면서 새잎이 난다고 한다. 마지막 작은잎(우편)의 자기 주장이 좀 센지 앞으로 돌출되어 있다(귀엽다). 근경이 짧으며 한 자리에서 점잖게 자란다. 나도히초미는 온대, 중부지방을 대표하는 관중과 달리 난대성 고사리다.

나도히초미의 잎. 인편은 위로 갈수록 털처럼 가늘어진다.


앞을 향해 돌출된 마지막 우편



초피나무

초피나무 Zanthoxylum piperitum 는 이번 답사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서울의 산에도 흔한 산초나무 Zanthoxylum schinifolium 와 같이 운향과로 내가 좋아하는 나무다. 산초든 초피든, 길에서 보이면 일단 잎을 만지고 보는데 그때 나는 산뜻한 향을 맡기 위해서다. 숲에서 즐길 수 있는 작은 행복 중 하나(가시를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둘의 향을 비교하자면 초피나무의 향이 훨씬 더 진하고 오래간다. 그래서 그런지 초피나무가 예부터 쓰임이 더 많았다.

초피나무


풀고사리

풀고사리과의 풀고사리 Diplopterygium glaucum 는 상록성 고사리다. 키가 1.5m~2m까지 자란다는데 실제로 처음 보았을때 뭐 저리 큰 고사리가 있나 싶었다. 풀고사리의 분포는 일본 남부를 지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열대 우림 지역까지에 이르는데 그런 지역에서는 10m까지도 자란다고 한다(!). 근경이 길게 벋는 편으로 큰 무리를 만든다. 국생지에 따르면 건조한 곳을 선호한다.

관목 사이로 얼굴을 내민 풀고사리가 거대해보인다.


같은 곳에 있던 풀고사리. 살짝 기운 듯한 모습인데 실제로도 처진 채로 자라는지 궁금하다.




기타 정보들

- 누리장나무 Clerodendrum trichotomum 는 양수지만 그늘에도 강하다.

- 귀룽나무 Prunus padus 는 잎이 일찍 나는 만큼 빨리 진다. 그렇기 때문에 잎이 늦게 나는 솔비나무 Maackia fauriei 와 같은 나무와 봄철, 가을철에 대비를 이룬다.

- 해발 200-300m 가면 노란 단풍이 많다. (왜 그럴까?)

- 숲 정원, 특히 음지에 가까울 수록 최소 10cm는 가벼운 토양(부엽토)을 사용하여야 한다. 그 밑으로는 물빠짐이 좋은 마사층 20cm~40cm가 필요하다.

- 대극과 (Euphorbia)는 가장 많이 분화된 식물이다.

- 윤노리나무는 숲속에서는 얌전히 자라지만 초원에서는 다간형을 비교적 왕성하고 거칠게 자란다(떡윤노리나무).

- 제주의 (자연)난대림은 계곡부 낮은 곳에 있으며 평지에 있는 것은 대체로 조림된 것이라고 한다.


참고문헌

Anne Whiston Spirn(2000). The Language of Landscape. Yale University Press.

김종원(2006). 녹지생태학-제2판. 월드사이언스.

김종원(2007). 식물사회학적 식생조사와 평가방법. 월드사이언스.

김종원(2013). 한국식물생태보감 1. 자연과생태.

김종원(2016). 한국식물생태보감 2. 자연과생태.

조민제, 최동기, 최성호, 심미영, 지용주, 이웅(2021).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조선식물향명집』 주해서. 심플라이프.

박수현, 조양훈, 김종환(2016). 벼과 사초과 생태도감. 지오북.

이창숙, 이강협(2018). 한국의 양치식물-제2판. 지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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