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궷물오름 ~ 족은노꼬메오름 (202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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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9일부터 이틀 동안 제주에서 개최된 '자연에서 공부하는 정원모임(자공정모)'에 참여하였다. 더가든 김봉찬 대표님을 비롯해 김명준 선생님, 김장훈 정원사님을 비롯한 여러 전문가분으로부터 제주의 식생에 대해 듣고 공부하고 눈으로 직접 관찰할 소중한 기회였다. 말로 전해 들은 것은 금세 머릿속에서 사라지기에, 당시 전해 들은 이야기와 관찰한 것들, 나의 경험과 직접 수집한 정보들을 한데 모아 정리해보고자 한다. 스스로 공부하기 위해 이곳저곳의 정보를 모아 정리한 글로 독창적 지적재산이 아님을 명시한다. 대부분의 정보는 김종원 교수님의 한국식물생태보감 시리즈와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서 인용, 참조했다. 부족한 글과 잘못된 추론으로 큰 배움을 주신 고마운 선생님들께 이 글이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창백한 단풍이 든 사람주나무




Much of the forest's beauty and intrigue results from the natural fitting of plants to place.

Nearly every woodland environment includes a diverse array of habitat niches, some extensive, others quite speciallized.

Rick Darke, The American Woodland Garden: Capturing the Spirit of the Deciduous Forest






왜승마

미나리아재비과 Ranunculaceae의 왜승마 Cimicifuga japonica그 정원에 심어본 연유로 나름 익숙한 식물이다. 나무 그늘 아래나 냇가 근처에서 자란다고 하여 웅덩이 옆 철쭉 아래에 숨기듯 심었는데 2년째인 2022년 가을까지 건강한 꽃을 보여줬다. 국생지에 따르면 국내 분포지는 제주도와 거제도라고 하는데 (영명이 Jejudo bugbane) 이렇듯 서울에서도 꽃을 볼 수 있다. 다만 이곳 자생지에서는 10월에 꽃이 지고 열매까지 맺었지 서울에 심은 개체는 10월 말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개화가 시작되었다. 도심지의 기온, 일조량 변화가 이곳 숲과는 다른 탓일 것이다.

왜승마 한 무리. 이미 꽃이 지고 씨앗을 맺었는데 서울식물원에 심은 개체보다 훨씬 빠르다(사진1). 무리의 개체 수는 적지 않다(사진2,3).



사진 아래쪽의 나침반을 보라. 왜승마 무리는 서사면에서 번성 중이다.


물이 고이는 곳 앞에 있어 공중 습도가 잘 유지되는 사면부에 왜승마와 십자고사리가 함께 있는 풍경. 산수국도 보인다.


가까이 들여다보자. 사진 우측 하단이 십자고사리이고 단풍잎 같이 생긴 식물이 왜승마. 산수국은 밝은 연둣빛 잎을 찾으면 된다.


2022년 8월 10일 촬영한 서울식물원의 그 정원. 웅덩이 바로 위쪽에 다소 비대해진 물싸리 뒤로 비비추 종류와 고비가, 그보다 더 안쪽으로 길쭉하게 솟은 왜승마의 꽃대와 십자고사리의 잎이 보인다. 그 뒤로 산수국이 큰 무리를 지도록 배치하여 연약한 숲 식물들이 도시의 고온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만들었다.


2022년 8월 10일 촬영한 왜승마의 꽃대. 7월 즈음부터 꽃대가 올라오는데 방울이 구슬아이스크림만큼 커지고 꽃이 피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서 애간장을 태운다.



2022년 10월 22일 촬영한 꽃. 작지만 자세히보면 참 아름답다. 팡! 팡! 팡!





십자고사리

관중과의 십자고사리 Polystichum tripteron 는 깊은 산에서라면 쉬이 만날 수 있다. 근경이 짧게 옆으로 기는데 그래서 그런지 자생지에서도 작은 무리를 이룬 것을 자주 보았다. 근경이 길어 넓은 영역을 쉽게 차지하는 가는잎처녀고사리와는 확연히 다르다. 양치식물은 잎의 계절성에 따라 사계절 내내 푸른 상록성과 겨울에 잎이 지는 하록성, 여름에 잎이 지는 동록성으로 나뉘는데 십자고사리는 겨울에 잎이 지는 하록성 고사리다.

궷물오름의 십자고사리


한남시험림의 십자고사리


원주 치악산 입구의 십자고사리. 2022년 8월 촬영


2022년 7월 17일 서울식물원 그 정원의 십자고사리. 산수국과 철쭉이 이루는 그늘 밑에 심었다.





상산

Orixa japonica 은 운향과 Rutaceae 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지)에 따르면 내한성 내조성이 강하고 양수이나 음지에도 잘 견디며 대기오염에도 강하다. 또한 생장이 빠르다고 하는데 이는 상산이 숲의 초기 단계에 출현하는 종이라는 설명과도 맞아떨어진다. 잎이 매끈하고 윤기가 나는데 문지르면 나는 냄새가 향긋하다. 다만 같은 운향과인 초피나무 Zanthoxylum piperitum 처럼 문지른다고 바로 나진 않으며 잎을 으스러뜨리듯 구겨야 향을 맡을 수 있다. 단풍이 든 잎은 창백하다. 2m 정도까지 자라는 관목으로 이야기되는데 언젠가 정원에서 써보고 싶다.

상산의 잎은 매끈하다.


궷물오름 산행길에서 유독 어린 상산 개체가 자주 보였다. 이 숲에는 산수국도 많았는데 상산과 산수국 모두 어린 숲에서 출현하는 종이라고 한다.


상산의 단풍색. 보기드문 창백함.




개감수

대극과의 개감수 Euphorbia sieboldiana. 어쩐지 속된 말로 '킹받는' 이름이다. 한약재 감수를 닮았지만 약재로 사용하지 못해 쓰임이 덜하여 개감수라 불린다고 한다. 보감에 따르면, 대극속 중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종으로 돌이 쌓인 양지바른 산비탈을 좋아하며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견디는데(강한 알칼리성 사문암 입지에서도 살아간다) 숲에 녹음이 짙어지기 전인 이른 봄에 꽃을 틔우는 봄맞이식물(Vernal plant)다. 봄에 나는 싹이 줄기부터 잎까지 붉다는 데 찾아보니 정말 신기하게 붉다. 그 붉은색이 차츰 사라지고 오묘한 형태를 가진 밝은 녹색의 잎이 된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모습이다. 꽃도 역시 예사롭지 않다.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데 피는 시기가 다르다. 자가수정을 피하기 위함이다. 이른 봄의 새싹부터 꽃까지 변화가 극명하다 보니 혹자는 개감수가 오랜 시간 공들여 관찰할만한 식물이라고도 한다. 나로선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형태의 꽃과 잎이 어떤 연유로 그렇게 진화하였는지 너무 궁금하다.

얼마 전 시청한 다큐멘터리에서 호주의 망치난초에 대해알게되었다. 망치난초의 꽃가루 매개는 티니드 말벌(수컷)인데 꽃이 암컷 티니드 말벌과 똑같이 생겼을뿐더러 향(페로몬?)마저 비슷해 수컷을 유인한다. 달콤한 꿀과 향기로 무수한 꽃가루 매개를 유혹하는 경쟁 식물들과 달리 망치난초는 티니드 말벌과의 밀접한 공생관계를 택하고 자연계에 결코 흔치 않은 꽃을 틔우게 되었다. 생물은 허투루 진화하지 않을 텐데, 개감수에게는 도대체 어떤 과거가 있었길래 이런 모습을 띠게된 것일까.

개감수



까치박달나무

까치박달나무 Carpinus cordata. 조선식물향명집에 따르면 이는 평북 방언을 채록한 것으로 박달나무를 닮았으나 열매가 아래로 쳐지며 달린 것이 까치의 모습과 비슷하기에 이름 붙여졌다고 추정한다. 숲속 계곡가에서 주로 자라는데 이번 답사에서 발견한 개체 역시 차축조류가 사는 못 근처에 있었다. 자작나무과, 서어나무속(Carpinus)의 나무로서 다른 서어나무속의 나무들보다 잎이 크고 가지런한 잎맥 많다. 대표적인 극상수종 중 하나.

까치박달나무의 열매. 거의 솔방울처럼 달린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열매 형태.



섬사철란

난초과 식물은 생장 형태에 따라 땅에서 자라는 지생종, 나무의 줄기나 바위 위에서 자라는 착생종, 잎과 엽록체가 없는 부생종으로 나뉜다. 섬사철란 Goodyera maximowicziana 은 그중에서 상록성 지생종으로 제주도와 울릉도를 포함한 남부의 섬에서 조금씩 살아간다. 크기가 10cm 정도로 작아서 유심히 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기 쉽다. 제주에서 본 자생지에서는 여러 개체가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뿌리가 짧기 때문에 근경으로 무성생식을 하진 않았을 것이고, 씨앗으로 번진 것일까 싶다(barochory). 크기가 작은 것과 서식처에서의 모습을 고려하여 정원에서 심을 경우 작은 무리를 만들어주는 것도 좋겠다.

등산로 경사면의 그늘진 곳서 자라는 섬사철란



산쪽풀

산쪽풀 Mercurialis leiocarpa은 대극과 산쪽풀속에 속한(개감수와 같은 과). 봄에 길쭉한 꽃대를 올려 꽃을 피운다. 산쪽풀의 '쪽'은 '쪽빛 하늘'을 이를 때의 '쪽'과 같다. 그런데 실제 '쪽'은 마디풀과, 페르시카리아 속의 식물이다. 그래서 산쪽풀은 쪽을 구하기 어려운 시절, 쪽을 대신하여 사용한 염료였다. 잎을 사용한다고는 하는데 실제로 어떻게 가공하여 쪽빛을 만들어내는지는 아직 찾지 못하였다. 과거 선조들이 쌓아온 식물에 대한 지식이 현대에 와서 필요를 잃게 되면서 많은 것들이 잊혔을 것이다. 산쪽풀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려나 싶다. 산쪽풀의 쪽빛은 어떤 하늘의 빛깔을 닮았을까. 비 온 뒤 오름 위에 뜬 맑고 투명한 하늘의 푸른색일까. 가을날 높은 한라산 정상에 걸친 짙은 푸른색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뱀톱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물 속 같다.



관중

관중 Dryopteris crassirhizoma 은 온대, 중부지방을 대표하는 고사리로 남부지방을 대표하는 나도히초미에 비견된다. 제주도에서 만주까지도 분포한다. 잘 자란 개체는 키가 1m까지에 이른다. 도심의 각종 조경공간에서 쉽게 활용되는 양치식물인데 자연에서 보이는 것만큼 강건하게 자라는 개체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낙엽활엽수림의 빛환경(dappled sun)과 부엽토가 많은 토양환경, 충분한 공중습도가 마련되지 못하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중은 이곳저곳에서 많이 쓰이며 그냥 그런 채로 버티며 생존한다. 사실 도시에 심긴 많은 숲식물들이 관중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

동물과 달리 식물은 한 장소에 머물러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살아가는 환경이 살아가기에 적당하지 않게 될 때 동물은 그곳을 떠나면 되지만 식물은 맞닥뜨린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식물은 환경변화에 맞춰 자신을 변형시키거나 심지어는 죽은 듯이 휴면하기도 한다.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식물의 숙명이다. 불쌍해 보이는 그 관중들도 그저 환경의 변화에 맞춰서 생존하기 위해 자신을 과감히 바꿔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이야기이긴 하다만, 나는 식물들이 사람처럼 고통을 느낀다거나, 다른 개체를 배려한다거나 하는 이야기에 아직 충분히 공감할 수 없다. 나에게 식물은 주변 환경에 맞추어 자신의 유전자에 적힌 대로 발달해나가는, 일종의 '기계'다. 그래서 식물이 잎을 뜯기거나 하더라도 그에 맞춘 화학적, 물리적 반응을 할 뿐 그들이 고통을 느낄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고통이나 슬픔을 느끼는 것은 사람이다. 그런데 식물이 상해를 입는 것을 볼 때 사람이 슬픔이나 고통, 분노 등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설령 식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사람이 그러한 장면을 보며 그것을 마치 자기 일처럼 받아들이는 일은 곧 생명에 대한 사랑과 공감능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들 대신 느껴주는 일. 존재 자체가 지구에 위협인 우리들이, 살아남기 위해 저지른 잘못들을 갚기 위해 치러야 할 무수한 대가 중에서 가장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둥글게 둥글게


과녁의 중심. 삼나무 잎이 잔뜩 쌓였다.



설설고사리

궷물오름에서 본 설설고사리 Polypodium decursive-pinnata 는 모두 등산로 주변 경사지에 있었다. 물이 오래 머무를만한 입지는 아니다. 그만큼 건조에 견디는 능력도 강하다고 추정할 수 있겠는데 잎이 경사면의 아래쪽을 향해 축 늘어지는 형태적 특징을 살려 수직정원에서도 충분히 활용해볼 만하다. 잎을 보면 활엽식물의 잎맥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베어 물어낸 듯한 모습이 특징적이다. 인터넷에 설설고사리를 검색해서 나오는 이미지를 보면 잎의 형태가 저마다 조금씩 다른데 형태적 변이가 좀 심한 것 같다. 조선식물향명집에 따르면 설설고사리의 설설은 발이 많은 벌레 '그리마'를 칭한다. 식물의 형태가 그와 비슷해서 그렇다는데 사실 그렇게 따지자면 다른 고사리들도 그리마를 연상케 하는 것들이 많은데 왜 굳이 이 고사리의 이름에만 '설설'이 들어갔는지는 의문이다. 유독 잎의 형태가 잘쪽하기 때문일까?

설설고사리의 잎


경사면에서 자라고 있는 설설고사리



개면마

'면마'는 관중 Dryopteris crassithizoma 의 다른 이름이다. '관중'과 '면마' 모두 한자어인데 관중 貫中 이란 말은 체육 용어로 '과녁 한복판의 검은 동그라미', 혹은 '화살이 과녁의 한복판에 맞음'을 뜻한다. 관중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름이 꽤 적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면마 綿馬 는 어떤 경위로 지어진 이름인지 잘 모르겠다. 또 관중이나 면마보다도 오래된 '희초미(회초미)'라는 명칭도 있는데 이 명칭 역시 유래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개면마 Pentarhizidium orientale 는 '면마(관중)'를 닮은 식물이라는 뜻인데 생긴 것을 보면 꼭 관중을 닮았다고 보기 어렵다. 광택이 나는 듯 매끈하고 두꺼운 질감의 잎이 관중과는 전혀 다르다. 갈색빛의 포자엽도 특징적이다. 남부지방에서만 자랄 것 같은 형상이지만 실은 한반도 전역에 분포한다. 특히도깨비부채가 살만한 촉촉한 곳에서 잘 자라는데 산지 계곡부나 반그늘에서는 크기가 매우 크게 자란다.

개면마의 포자엽



홍지네고사리

홍지네고사리 Dryopteris erythrosora 는 뿌리가 뭉쳐난다(한국의 양치식물에서는 뭉쳐난다고 하지만 국생지에서는 비스듬히 선다고(ascending) 한다. 사실 이 둘의 차이가 얼마나 유의미한지, 나로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가는잎처녀고사리에 비해 이리저리 쉽게 번지지 않아 사회성이 좋다고도 볼 수 있겠다. 사실 대부분의 관중속 Dryopteris 식물은 뿌리줄기가 곧바로 위를 향하거나(erect) 뭉쳐나며(tuft) 드물게 짧게 긴다(short creeping). 최하부 우편의 첫 번째 소우편이 그다음 소우편에 비해 작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제주지네고사리, 층층지네고사리, 엷은잎지네고사리, 큰지네고사리, 반들지네고사리, 가는홍지네고사리가 공유하는 특징이다. 그다음에 이들을 구분할 때는 비늘조각의 형태나 색상 등 한 눈에 구분하기 어려운 지점들을 확인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양치식물 중에 상록성인 것들이 종종 있다. 쇠고비는 전국에서 흔히 보이는 상록성 고사리인데 홍지네고사리 역시 그러하다. 다만 서울에서도 월동이 가능한지는 좀 더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홍지네고사리의 우편. 마지막 소우편이 다른 소우편에 비해 확실히 작다.



산족제비고사리

산족제비고사리 Dryopteris bissetiana 는 상록성고사리다. 한반도 전역 산지에서 흔히 자란다고 한다. 맨 아래의 우편이 다른 우편에 비해 넓다. 짧은 자루가 있다는데 직접 확인하진 못했다.

햇살에 반짝이는 잎. 단단해 보이는 질감 덕에 이 식물이 상록성임을 추정하게 한다.



가는잎족제비고사리

가는잎족제비고사리 Dryopteris chinensis 는 산족제비고사리와 달리 하록성이다.

가는잎족제비고사리. 산족제비고사리와는 질감이 확실히 다르다.



지네고사리

지네고사리 Parathelypteris japonica 는 처녀고사리과에 속하는 하록성 고사리다. 근경이 짧게 벋는다. 맨 아래 우편이 중축을 향해 살짝 모이는 것이 특징적인데 그 모습이 은근히 귀엽다. 지네고사리 역시 서울에서 제주까지 잘 자란다.

지네고사리의 단아한 잎


지네고사리와 산족제비고사리가 함께 자라는 모습



속단

속단 Phlomis umbrosa 續斷 을 한자로 풀어보면 끊어진 것을 이어준다는 의미가 되는데 조선식물향명집에 따르면 이 식물이 끊어진 뼈를 이어주는 효능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지어졌다 한다. 실제로 동의보감에도 이와 관련된 기록이 있고 하니 오래전부터 약용으로 사용된 식물인듯하다. 보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속단속이 3종 (속단, 산속단, 큰속단)이 분포하며 중국에는 총 43종이 분포해 세계 최고 수준의 종 다양성을 보인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그 분포의 끝자락으로 일본에는 속단속이 한 종도 분포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대륙성 식물. 속단은 꿀풀과다. 흔히 보던 꿀풀과 달리 덩치가 커서 1m까지도 자란다. 초지의 구성원이지만 선선한 것을 좋아해 그늘진 곳에서 자란다. 종소명 umbrosa에는 그늘을 좋아한다는 뜻이 담겼다. 자생하는 야생 개체가 흔치 않으며 종보전등급[III]의 주요감시대상종이다. 이번 답사에서 발견한 개체는 등산로 옆, 서사면의 끝에서 만났다. 7월 정도에 개화한다. 귀한 여름 꽃.

속단


속단



덧나무

덧나무 Sambucus racemosa (Sambucus sieboldiana) 는 제주도를 비롯한 남부의 해안가에서 자란다. 특히 제주도에서 많이 자라는 관목 성상의 나무로 뼈를 치료하는 약으로 쓰이거나 집 안에 걸어두어 사악한 기운이 오는 것을 막았다고도 한다. 인동과에 속하며 영화 해리포터에서 지팡이 재료로 소개되어 유명한 딱총나무속의 나무다. 봄에 꽃이 피며 늦여름에 달리는 빨간 열매가 인상적이다.

덧나무의 잎



곰의말채나무

가을 숲 바닥에 붉은 산호를 닮은 것이 떨어져 있다. 진짜 산호는 아니고 열매가 떨어지고 남은 곰의말채나무 Cornus macrophylla 의 꽃자루(열매자루)다. 꽃이 필 때부터 붉지는 않다. 꽃이 필 때는 흔한 초록빛인데 열매가 검게 익어감에 따라 꽃자루 역시 점점 붉어진다. 층층나무과의 나무로 잎과 꽃차례가 어긋나는 층층나무와 달리 잎과 꽃차례 모두 마주난다. 말채나무 역시 그러한데 수피가 잘 갈라지지 않는 곰의말채나무와 달리 말채나무는 감나무처럼 수피가 갈라진다. 잎의 측맥이 4~5개인 말채나무와 달리 6~8개인 것 역시 곰의말채나무의 특징이다. 제주를 비롯한 남부에 주로 분포하는 것 같다. 가을에 붉은 산호를 보고 싶다면 이 나무를 활용하는 것 좋을 것이다.

붉은 산호를 닮은 곰의말채나무의 열매자루



머귀나무

머귀나무 Zanthoxylum ailanthoides 는 운향과이며 초피나무와 같은 속이다. 그래서 초피나무처럼 그 열매를 향신료로 사용하였다. 역시 남부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로 내한성이 약한 편이다. 초피나무나 산초나무의 가시룰 보면 노루나 고라니 같은 식물들이 먹기에 너무 아플 것 같아 그 존재 이유가 분명하게 느껴지는데 머귀나무나 엄나무 같은 식물들의 가시를 보면 이게 그만한 쓸모가 있나 싶다. 코끼리나 기린 같은 대형 초식동물이 한반도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성목이 되어서까지 에너지를 소비해 가시를 발달시키는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했을까? 구석기 시대 한반도에는 원숭이가 살았다던데 이들로부터 지켜야 했던 것일까? 가시가 없는 민머귀나무도 있는데, 머귀나무의 가시는 퇴화해가는 기관일까? 궁금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머귀나무의 가시 흔적. 주간이라 이러한 것이며 어린 가지의 가시는 더 날카로워 보인다.



고추나무

고추나무 Staphylea bumalda 는 고추나무과 고추나무속의 나무다. 원주 성황림의 계곡 부근에서 처음으로 야생 개체를 보았고 이번 답사에서 두 번째로 만났다. 창경궁에도 몇 개체가 있다. 야생의 서식처에서 알 수 있듯이 습기가 좀 있는 환경을 선호한다. 봄이 한창일 때 피는 꽃의 향이 참 좋고 두 갈래로 갈라져 달리는 열매도 인상적이다.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다.

고추나무의 열매



차축조류

식물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육상식물을 떠오르게 되기 마련이지만 식물이라고 여겨지는 생물의 범위는 그것보다 훨씬 더 넓다. 조류 역시 넓은 의미에서 식물에 포함되며 차축조류는 그중에서도 민물에 사는 다세포 녹조류를 이른다. 잎처럼 보이는 가지가 줄기 마디에서 돌려나 양치식물 중에서도 쇠뜨기를 닮았다. 생김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류 중에서도 육상식물과 가장 유사하다.

차축조류가 있던 못의 전경


물 속 차축조류의 모습. 기포가 많다.



장님거미(통거미)

어린 시절. 무주 덕유산은 명절마다 찾아가는 우리 가족의 단골 여행지였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젊은 시절 추억을 따라 무주 산골에 숨은 폭포와 계곡을 찾았다. 장님거미를 처음 만난 곳 역시 무주의 한 계곡에서였다. 이끼가 낀 크고 작은 돌들이 있는 계곡. 폭포를 향하는 그 촉촉한 계곡에는 물봉선이 잔뜩 피어있었다. 돌을 짚으며 계곡길을 오르는 나의 눈에 다리가 무척 긴 거미를 닮은 곤충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리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있겠지만, 처음 보는 그 특이한 생김새는 어린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 이후로 이 거미에 대한 기억은 잊혔는데, 2021년 가을, 강원도 대암산 등산로에서 이 곤충을 다시 만났다. 어린 시절에 찾았던 그 계곡처럼, 이끼가 많고 물봉선이 피는 계곡 부근의 습한 바위 위였다. 반가운 마음에 집으로 돌아가 거미 도감을 뒤적거렸는데 도통 이 거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 곤충이 분류학적으로 거미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거미(spider)라고 부르는 곤충은 거미강(Arachnida) 거미목(Araneae)에 속하는 절지동물로 거미강에는 거미뿐만 아니라 전갈, 응애, 진드기 등 다양한 절지동물들이 이 분류에 속한다. 이 곤충 역시 거미강에 속하지만, 거미와 달리 통거미목(Opiliones)에 속한다. 그도 그럴 것이 몸이 머리가슴과 배, 두 부분으로 나뉘는 거미와 달리 이 곤충은 머리가슴과 배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

곤충이나 동물의 사체, 배설물, 부식해가는 식물 등을 먹고 사는 자연의 청소부로 알려졌다. 긴 다리를 흔들거리며 휘청거리듯 잘 이동하는데 다리가 얇아 마치 몸만 떠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동굴이나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깨끗한 계곡에 주로 살기 때문인지 이 곤충들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지구에는 이처럼 아직 사람이 다 알지 못하는 신비와 비밀이 가득하다.

열심히 이동하던 통미목의 곤충



남방노랑나비

남방노랑나비 Eurema mandarina (Eurema hecabe) 는 흰나비과 남방노랑나비속의 곤충이다. 한국나비생태도감에 따르면 이 속의 곤충은 '아프리카 북부에서 인도와 동양 열대구, 오스트레일리아구, 중국, 일본 등 열대에서 온대의 따뜻한 지역까지 분포'하며 '우리나라가 북쪽 한계에 해당'한다고 한다. 악동뮤지션 덕분에 널리 알려진 묵은실잠자리처럼 가을에 성충이 된 개체는 어른벌레로 겨울을 나는 것도 특징이며 콩과식물을 먹이로 삼는다. 그러다 보니 콩과식물이 많은 숲 경계나 들판에서 주로 산다고 한다. 실제로 이 종을 촬영한 장소 역시 오름 숲이 끝나고 초지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꿀을 빠는 남방노랑나비 성충



기타 정보들

- 자귀나무 Albizia julibrissin 는 큰 개체일수록 이식에 약하다. 심고자 하는 경우, 화분에 심긴 것을 심는 것이 좋다.

- 녹나무과의 감태나무 Lindera glauca 는 겨울에도 잎이 잘 안 떨어져서 겨울 정원에 활용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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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2016). 한국식물생태보감 2. 자연과생태.

조민제, 최동기, 최성호, 심미영, 지용주, 이웅(2021).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조선식물향명집』 주해서. 심플라이프.

박수현, 조양훈, 김종환(2016). 벼과 사초과 생태도감. 지오북.

이창숙, 이강협(2018). 한국의 양치식물-제2판. 지오북.

문형태, 유영한(2019). 토양환경과학. 공주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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