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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매화 (2022. 10)


1년 전 여름, 서울식물원의 그 정원 @37.56n126.83e 에 물매화를 심은 적이 있다. 물매화는 아직 잘 모르기도 하고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구한 20본을 실험 삼아 여러 입지에 나누어 심었다. 굵은 마사를 깐 배수로 부근 양지, 산수국과 같은 광엽식물 하부, 그리고 홍띠 사이. 제주 오름이나 무덤 위에서도 자란다는 이야기를 듣고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밝은 곳에 심은 분들은 모두 식물별로 가셨다. 그해 늦가을까지 살아남아 꽃을 피운 것은 홍띠 사이에 심은 개체가 유일했다. 그 개체는 겨울도 잘 이겨내 이듬해 봄, 새잎까지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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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매화, Parnassia palustris는 양지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지난 여름 용늪에서 본 개체가 자라는 곳 역시 그러한 입지였다. 강한 빛에 잘 견딜 것 같지만 도심지에서 같은 빛 조건에 심을 경우 실패할 확률이 높다. 물매화는 본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고온에도 취약한데, 도시에서는 여름의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고층습원의 물매화는 큰방울새난, 진퍼리까치수영과 함께 진퍼리새-하늘새제비난군집 안에서 혼생한다.[1] 이탄층 위에 사는 진퍼리새는 해를 거듭하며 여느 벼과식물들처럼 그루터기를 만드는데 물매화 같은 식물들은 흔히 바늘골, 끈끈이주걱이 살게 되는 골진 곳 보다는 위 쪽에서 자란다.


고층습원은 저온과 빈영양, 그리고 산성토양이 특징이다. 그래서 고층습원 식물들을 심기 위해선 피트모스를 사용하는 게 그들의 본래 서식처와 가장 유사한 토양환경을 만드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피트모스는 널리 알려진 이유 때문에 되도록 쓰지 않으려 한다. 또한 높은 산에서나 볼 수 있는 특수한 식생 환경을 복사해 도심에 구현하는 것은 수목원처럼 연구를 수반한 환경에서나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일반적인 정원에서 애써 재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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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물을 포함해 다른 미소 생물들의 사회까지 고려한 서식처로서의 도시공원과 녹지를 꿈꾼다. 그리고 비로소 정원이 된 그곳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전반적인 생태적 감수성 증대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어느 곳에서든 그곳의 토양과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식물들을 심어야 한다는 당연한 원리까지 닿게 된다. 만약 특수한 식물을 심고 싶다면 빛조건과 지형, 식생의 수직적 구조 및 시설물에 대한 치밀한 설계, 근거리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한 약간의 토양개량 등을 통해 그 식물도 살 수 있는 특수한 미소서식처를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또 도전해볼 만한 일이기도 하다.


지난 여름, 최지은 작가 @jannecho 를 도와 인천에 조성한 정원 @beyondthedoor_garden 은 산지습지의 종조성에 기반한 식재공간을 품고 있다. 산지습지를 재현하려 하기보다, 구축된 지형과 시설물에 의해 만들어지는 물리적 여건,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식물들의 생태적 특징을 고려하여 새로운 경관을 만들고자 하였다. 가장 낮은 곳의 부채붓꽃과 부처꽃에서 시작해 조금 더 높은 곳에는 진퍼리새와 물매화, 숫잔대, 동의나물, 닭의난초 같은 식물들을 함께 심었다. 사면 위 상대적으로 더 건조해지는 곳에는 홍띠와 실새풀 종류를 비롯해 산비장이 같은 풀밭의 구성원들을 두었다. 몇 그루의 물푸레나무와 노각나무, 산딸나무와 단풍나무가 위에서 그림자를 드리운다.


인천 검단지구에는 140본의 물매화가 심겼다. 지난 해 서울식물원에서 성공한 경험을 살려 대부분의 물매화를 진퍼리새나 홍띠의 성근 그늘 밑에 심었다. 부지에 매설된 폐기물 처리문제로 기존에 있던 토양은 어쩔 수 없이 교체하게 되었지만, 앞서 언급한 모든 식물은 비료나 피트모스가 섞이지 않은 ‘채를 친 흙(사질토)’에 심겼다. @37.56n126.83e 에서 목격했듯이 이들이 꽃을 피우고 겨울을 난다면 물매화를 비롯한 고층습원 식물들의 서식(생존) 환경에 대한 실증적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실패한다면? 그러면 다시 다른 조건에서 도전해봐야지.


모든 존재가 그렇듯 정원 역시 늘 바뀌는 상태에 있고 오로지 실재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모습뿐이다. 내년 봄, 내년 가을, 그리고 몇 년 뒤, 이 경관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 있겠지만, 사람이 세대를 거듭하는 찰나의 시간 동안이라도 이 낯선 만남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지난 10월 2주 차에 관찰한 결과 스프링클러가 닿는 영역의 개체 중 일부를 제외하고선 대부분의 개체가 여름을 잘 나고 꽃대를 올려보냈다. 촬영을 한 것이 지난 10월 10일이니 빠르면 1주일, 늦으면 2주 정도 후에는 더 많은 물매화가 활짝 필 듯하다. 부디 올해 겨울을 잘 넘길 수 있기를.


[1] 김종원, 김중훈. (2003). 울산 무제치늪의 식생: 군락분류와 군락동태. 한국생태학회지 26(5):281~187



*아직 모르는 것도 배울 것도 많습니다. 틀린 내용, 다른 의견이 있다면 댓글이나 이메일 등으로알려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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