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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계곡

그 계곡에는 겨울이면 눈이 장맛비만큼 내렸다

규철이 키 만큼 쌓이는 눈 

지긋지긋한 눈

 

계곡 위쪽 마을은 설피라고 불렸다 

봄이면 얼레지가 아닌 얼러지가 피는 곳 

잣나무 가지에 앉은 곰이 게으름을 피우는 곳

 

지게에 

부지깽이 취나물 당귀를 싣고

쌀을 싣고

계곡을 오르내리기를 스무 해

 

소를 팔아 서울에서 돈 벌겠다던 아들은

청량리에서 돈을 모조리 잃고 돌아와

어머니 5년만 기다리세요 그때는 이 계곡을 벗어나게요

라고 말했다

 

약속대로 계곡에서 내려와 

양양서 택시 기사를 하는 아들은 

조침령 곰배령 구룡령으로

손님을 싣고 계곡을 오르내린다

 

계곡에 남아 얼어붙은 이야기들로도

눈이 부시는 2월



 

*

오늘은 빛을 본 것으로도, 물의 결정과 얼음의 눈물을 본 것으로도 울 수 있다. 기록하는 것은 빛으로도 울 수 있는 인간의 책임이다. 숲과 계곡에 쌓인 눈에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그것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은 티끌만큼의 용기로도 가능한 일이다. 

김현의 시집 '입술을 열면'과 박준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이 시를 적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Light and Water

online exhibition : 230305 - 230405

​모든 사진은 2023년 2월 26일 최지은과 함께한 점봉산 답사에서 촬영하였습니다.
​물, 빛, 눈, 생명, 숲을 주제로 분류하였습니다. 아래의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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